트로트 뜻 유래 정의 시대별 변화와 역사
트로트가 처음 생겨난 일제 강점기부터 2020년 현재까지 트로트는 오랫동안 한국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오늘날에는 가히 트로트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트로트의 뜻은 무엇인지 어떻게 유래되었는지 시대별로 어떠한 역사를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트로트의 뜻
일제 강점기에 일본 엥카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대중가요 장르 중 하나로 뽕짝이라고도 불립니다.
트로트의 개설
독특한 5 음계를 음악적 특징으로 하며, 1930년대를 전후하여서는 일본 엥카의 번역, 번역 노래가 많았습니다. 그 후 1930년대 중반에 트로트가 정착하게 되었으며, 신미요와 함께 일제 강점기 대중가요의 양대 산맥을 이룹니다. 1960년대 이후 스탠더드 팝이나 포크 등이 강세를 보여 쇠퇴하였지만, 새로운 양식들과 혼합하였고 지금까지도 꾸준히 사랑받고 있습니다.
트로트의 유래
트로트라는 말은 서양의 춤곡인 폭스 트로트(for trot)에서 왔지만 한국의 트로트 양식과 폭트 트로트는 2박자라는 점을 제외하고는 관련성이 없습니다. 트로트는 '라시도미파'의 단조 5 음계를 사용하거나, '도레미솔라'의 장조 5 음계를 '라'의 비중을 높여 사용하는 독특한 음계를 지녔고, 일본 대중가요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거든요.
일제강점기에 이 양식은 특별한 명칭 없이 유행가, 유행소곡 등으로 불리면서, 우리나라 민요의 어법을 적극적으로 계승한 신민요 양식과는 차이가 있는 노래로 자리 잡았습니다.
트로트라는 명칭은 스탠터드 팝이 대중화된 1960년대 중반에 들어서야 이름으로 굳어졌는데요. 1960년대 말에 이르러 '뽕짝'이라는 다소 비하적 명칭이 등장하여 꽤 오랫동안 통용되기도 하였고, 이런 비하적 의미가 함축된 반작용으로 인해 1980년대 후반 전통가요로 불리기도 하였으나 1970년대 이후 트로트라는 명칭이 가장 대중적으로 널리 쓰이게 되었습니다.
트로트의 가사에서 풍기는 정서적 내용은 마치 신파성을 지닌 소설이나 연극, 영화와 동일합니다. 세상이나 타인과의 갈등에 대한 해결, 조정의 가능성은 없고, 스스로 욕망을 꺾고 체념하며 이런 패배를 자학하며 자기 연민의 태도와 감정으로 해소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거든요. 그렇기에 트로트는 대개 애절한 슬픔을 노래하고,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 자신의 처지에 대한 비관, 고향을 떠나 떠돌아다니는 청년의 고통으로 진지하고도 자조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이것은 자연과 계절의 아름다운, 향토적 삶을 즐겁게 노래하는 신민요가 지닌 향락적인 정서 경향과 결을 달리 합니다.
트로트의 시대별 역사
◈ 일제 강점기까지
1922년~1930년 사이 사의찬미의 윤심덕을 비롯해 낙화유수의 이정숙과 봄노래 부르자의 채규엽 등이 대표적인 가수였습니다.
◈ 1950년대 이전
구한말, 개화기, 일강기를 거치며 다양한 경로를 통해 한국으로 들어온 서양문물 중에는 이전에 설명하였던 폭스트롯이 포함되어 있었고 이것이 한국인들의 음악 취향과 결합하여 트로트라는 장르가 탄생하였습니다.
1930년대 1940년대 즈음엔 백년설, 고복수, 이난영, 남인수, 이애리수 등을 중심으로 여러 명곡들이 유행하였고, 당시 트로트는 서양에서 전해진 세련된 음악이라는 인식이 있었습니다. 당시 트로트 가수들은 당대의 미성이었고 가사 또한 심미적이며 서정적인 분위기를 지녔습니다. 특히 목포의 눈물, 나그네 설움 등은 지금도 명곡이라고 꼽히고 있죠.
한편으론 일제강점기가 점점 진행되며 광복 이후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왜색이 짙은 곡들이 많아졌습니다. 친일 가수들이 활동하기도 했고 일제가 민족말살 통치를 시작함으로써 한국적 정서를 띄는 노래는 만들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목포의 눈물 같은 이난영 조차 일부 친일 행적 의혹을 받고 있기에 이런 시대에서 왜색을 띈 노래가 대량으로 만들어졌던 것은 어쩔 수 없었을 것 같습니다.
◈ 1950년대
한국전쟁 이후 트로트는 점점 대중화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박재홍의 울고 넘는 박달재, 현인의 실라의 달밤 등 대중들 사이에서 매우 크게 유행하던 트로트가 나온 것이 이때 즈음입니다. 이 당시에 트로트는 주류 문화였고 1970년대 포크 음악이 강세가 되기 전까지 당대 대부분의 명곡은 트로트가 차지하였습니다.
한국 전쟁을 소재로 한 이별의 부산정거장이나 굳세어라 금순아, 이해연이 발표한 단장의 미아리고개 등의 트로트 명곡이 크게 유행하기도 하였습니다.
1950년대는 트로트가 분격적으로 대중화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는 시기입니다. 트로트가 서민의 노래가 되었고 즐기는 국민들이 많아졌으며 다양한 소재를 다루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해방 이후 대대적으로 왜색을 걷어내는 운동을 통해 트로트 역시 일본 스타일을 지우고 한국적인 정서를 띄게 되었고 일부 악의적인 주장처럼 트로트가 일본 엔카의 열화판이 아닌 한국 음악의 한 장르로서 남아있을 수 있게 된 것이지요.
◈ 1960년대
트로트는 1960년대 이후 하나의 장르로 굳어졌습니다. LP판의 시대가 되면서 트로트는 더욱더 발전되었습니다. 특히 1959년에 데뷔한 이미자는 1960년대 왕성한 활동을 하는 가수 중 하나로 손꼽히고 이 시기에서 정상에 올라 트로트의 중심에 서 있던 가수입니다.
최희준, 김상희 등 고학력 가수들이 등장하면서 학사 출신 가수들이 주목을 받았고, 미 8군 무대에서 활동하다 데뷔한 현미의 '밤안개'가 인기를 끌었습니다. 또한 1961년은 한명숙이 발표한 노란 샤쓰의 사나이도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1967년에는 남진이 부른 '가슴 아프게'가 히트하였고, 같은 해 그의 라이벌이자 후일 국민가수로 불리는 나훈아가 데뷔하기도 하였습니다. 그와 함께 자매 가수들도 많은 활동을 하였는데 워싱턴 광장, 울릉도 트위스트 등을 부른 정 시스터즈를 비롯해 남성 금지구역, 화진포에서 맺은 사랑을 부른 이 시스터즈, 마포종점, 삼천포 아가씨 등을 부른 은방울 자매가 유명합니다.
◈ 1970년대
1970년 대에는 신인 가수였던 남진, 나훈아가 라이벌 2인 체제를 이루었습니다. 이 시기에 통기사 가수, 포크송 가수 등 여러 장르의 가수들이 등장하였지만, 남진, 나훈아의 인기가 대단했기 때문에 아직 대세는 트로트였죠.
남진은 팝 스타일과 빠른 템포의 트로트를 내보였고 나훈아는 정통 트로트를 주로 노래하였습니다. 이때부터 트로트는 정통과 정통에서 벗어난 다양한 음악적 요소로 세분화되었습니다.
이성애가 일본에서 데뷔하면서 트로트를 소개하였습니다. 이후 조용필이나 김연자, 계은숙 등의 가수가 일본에서 활동하는 계기가 되었고 많은 트로트 곡이 히트하였습니다.
◈ 1980년대
1970년대 말에 조용필이라는 대형 가수가 등장하여 미워 미워 미워, 일편단심 민들레야 등의 트로트 가요를 히트시켰습니다. 이때 트로트계 여성 가수들이 대거 등장하였는데 김수희, 심수봉, 주현미가 대표적입니다.
김수희는 작곡가 출신으로 미 8군 부대에서 블랙 켓츠의 보컬로 활동하여 남포동 부르스, 멍에, 잃어버린 정 등 느린 곡조의 트로트를 히트시켰습니다. 1986년에 대한민국의 국민가요이자 응원가로 유명한 남행열차로 많은 인기를 얻기도 하였습니다.
심수봉은 제2회 대학가요제에서 처음으로 트로트로 출전하여 입상한 계기로 대한민국의 입지적인 싱어송라이터가 되었습니다. 당신은 누구시길래, 무궁화, 사랑밖엔 난 몰라 등의 자작곡을 히트시켰고, 1984년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는 2만 여장의 음반 판매량을 기록하였습니다.
주현미는 약사 출신으로 제2회 강변가요제로 데뷔하여 비 내리는 영동교, 눈물의 부르스 등을 히트시켰고 1988년 신사동 그 사람으로 골든 디스크 대상을 수상하였습니다.
◈ 1990년대
1980년대 말 미국에서 귀국하여 대성공을 이룬 송대관과 태진아는 트로트 신예로 급상승한 설운도, 오랜 무명시절을 견뎠던 현철과 함께 트로트 사국시대를 형성하여 트로트 음악의 부활을 주도하였습니다.
한편, 여성 가수들 중에서 서울 시스터즈로 데뷔했던 방실이가 솔로 가수로 전향하여 음반을 낸 서울탱고가 가요계 정상권을 차지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에 들어설 무렵 락, 발라드, 댄스 팝, 힙합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대한민국 가요계를 주도하면서 트로트는 소외되었고 침체기의 길을 걷게 됩니다. 이 시기에 댄스 가수였던 김혜연이 등장하여 기존의 정통 트로트에 여러 음악적 요소를 가미시킨 세미 트로트를 선보였습니다. 그는 서울 대전 대구 부산으로 젊은 층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 2000년대 이후
김혜연이 새로운 세미 트로트를 시도하게 되면서 대부분의 트로트 가수들은 정통 트로트에서 벗어나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접목시킨 세미 트로트가 번성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트로트는 성인가요, 어른들의 노래, 시대에 뒤떨어진 노래 등으로 인식되어 왔고 중년층 이상에게만 사랑을 받는 음악이었습니다.
그러다 2004년 장윤정이 어머나로 데뷔함과 동시에 신세대들에게 친금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 후 2005년 박상철의 '무조건'은 남성들의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 후 윙크, 홍진영, 김수찬 등 젊은 트로트 가수들이 배출되었습니다.
◈ 2020년 현재
2019년부터 TV 조선에서 '내일은 미스 트롯' ' 내일은 미스터 트롯'을 시즌제 방송하며 대한민국이 트로트의 세상이 되었습니다. 세미 트로트에 치중되어있었던 트로트계가 정통 트로트가 다시 사랑받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MBC에서 방영한 놀면 뭐하니? 에서 유산슬의 사랑의 재개발 등은 트로트 인기에 기름을 붓는 역할을 타였습니다. 다가오는 가을 지상바 3사에서도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을 방영할 예정이며, 트로트 가수들은 시청률 보증수표가 되었습니다.
실제로 미스 트롯, 미스터 트롯 출신 가수들의 화제성이 대단해서 TV 예능 출연도 꽉 잡고 있다고 하네요.
트로트의 평가
일제강점기 동안 대도시의 세련된 양식으로 받아들여졌던 트로트는 이를 압도하는 미국 대중가요풍의 경향이 대두되던 1950년대 후반부터 비판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일본 대중가요의 강력한 영향 아래에서 형성된 양식이라서 왜색, 일제 잔재로 청산 대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1960년대 한일수교나 1980년대 일본 대중문화 개방에 대한 반대 여론이 드세어질 때에, 가장 손쉽게 비판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1960년대 후반 동백 아가씨 등의 많은 곡이 왜색이라는 이유로 금지되었고, 트로트가 지나친 애수의 감성이기에 퇴폐적이고 불건강하다는 비판도 있었습니다. 특히 해방 이후에 태어난 전후세대들에게 트로트의 신파적 감성이 부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져 비판에 초점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한편, 트로트가 지닌 독특함은 역사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 만큼 역사적 거리가 확보된 이후에는, 그 의미가 재해석되어 작가주의적인 창작의 재료로 활용될 수 있었습니다.
마치며
트로트의 유래는 일제 강점기에 엥카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거지만, 현재 우리가 향유하고 있는 트로트는 우리 고유의 것입니다. 우리 입맛에 맞게 우리 정서에 맞게 변용된 우리만의 것입니다. 트로트가 만들어진 순간부터 지금까지 트로트는 흥망의 길을 모두 걸어왔고 그 기간 동안 명맥이 끊기지 않고 오랫동안 사랑받았습니다. 특히 2020년 현재 이렇게도 트로트가 사랑받는 이유는 트로트가 지극히도 우리의 것이고, 듣는 이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용기를 준다는 것 때문이 아닐까요?
트로트의 뜻과 유래, 시대별 흐름에 따른 트로트의 변화를 알아보았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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